[새해 CES 트렌드] ③ "K-혁신 글로벌 도약: 최고혁신상 50% 석권 그 의미와 과제"

[분석 기고] 제이슨 박 오산대학교 교수

2025-11-25     제이슨 박

 

[Gemini-3.0 Pro 생성 이미지]

"도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CES 2026 혁신상 명단을 끝까지 훑어본 해외 기자들이 공통으로 던진 질문이다.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 30개 가운데 정확히 절반인 15개를 한국 기업이 차지한다. 미국 6개, 중국 2개, 일본 1개를 크게 앞지른 이 성적은 단순한 선전을 넘어, 글로벌 기술 지형 자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 기고문 ①(23일자)에서 우리는 AI가 화면을 박차고 나와 산업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피지컬 AI 혁명'을 확인했다. ②(24일자)에서는 CES가 가전전시회를 넘어 B2B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제 ③에서는 그 거대한 전환의 무대 중심에 선 한국 기업들의 역사적 성과와, 이를 지속가능한 도약으로 연결시킬 전략적 과제를 짚어본다.

▶올팀이 빛난 K-혁신의 황금기

이번 성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상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누가' 수상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삼성전자·LG전자 같은 대기업부터 딥퓨전AI, 스튜디오랩, 네이션에이, 둠둠 같은 딥테크 스타트업까지, 15개 수상 기업 중 11개(73%)가 스타트업 및 중견기업이었다. 그야말로 '올팀'이 활약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혁신 동력이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발휘하는 다층적 생태계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수상 분야도 AI, XR, 사이버보안, 핀테크, 콘텐츠, 스마트시티 등 미래 핵심 기술 전반에 걸쳐 고르게 분포했다.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은 이 '다양성'은 한국 기술이 이제 단일 제품의 경쟁력을 넘어, 다양한 산업적 응용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K-가전에서 K-딥테크로의 질적 도약

그동안 한국은 'K-가전', 'K-스마트폰'으로 CES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CES 2026에서 드러난 위상은 그보다 훨씬 깊은 층위에 있다. 한국 기업들이 수상한 영역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지도가 그려진다.

두산로보틱스의 '스캔앤고'는 로봇팔과 자율이동로봇을 결합해 검사·샌딩 작업을 수행하는 피지컬 AI 플랫폼으로 AI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한국 팹리스 딥엑스(DeepX)의 저전력 NPU는 터키/미국 기업 식스팹(Sixfab)과 협력해 'ALPON X5'를 탄생시켰고, 이는 엔터프라이즈 테크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삼성전자의 'S3SSE2A'는 양자내성암호(PQC)를 하드웨어 칩에 구현해 미래 양자 컴퓨팅 시대의 보안 위협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로 사이버보안 부문을 석권했다.

이들은 더 이상 "멋진 완제품을 잘 만드는 기업"이 아니다. 공장·도시·차량의 눈과 귀가 되는 센서, 로봇·드론 안으로 들어가는 AI 칩, 전력망·보안·모빌리티를 지키는 인프라 기술을 공급한다. 한국이 피지컬 AI와 B2B 플랫폼의 핵심 부품과 표준을 제공하는 나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적 융합 솔루션, K-혁신의 정체성

한국 기업들이 CES 2026에서 보여줄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실용적 융합 솔루션'에 있다. 미국이 원천 기술과 플랫폼에서, 중국이 대규모 제조 역량에서 각각 강점을 보인다면, 한국은 이 사이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기술 융합'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

식스팹의 하드웨어와 딥엑스의 NPU가 결합한 'ALPON X5'는 이를 상징하는 성공 사례다. 이 협력은 한국의 강점이 단독 기술 개발이 아닌, 글로벌 파트너의 강점과 자신의 기술을 융합해 시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데 있음을 증명한다. 마치 고급 원단(원천기술)과 정교한 재단 기술(제조) 사이에서 완성도 높은 정장(실용적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장인과 같다.

이러한 융합 역량은 기고문①에서 다룬 '보이지 않는 기술(Invisible Tech)' 트렌드를 선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한국전력이 5개 부문 혁신상을 받으며 보여준 AI 기반 전력망 관리 시스템 'SEDA', LBS테크의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MaaS-Bridge', 세라젬의 AI 웰니스 홈 플랫폼은 모두 사용자를 위해 복잡함을 숨기고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공기 같은 기술'이다.

▶미래 기술 표준을 선점하다

삼성전자의 양자내성암호 칩은 한국 기술의 선점적 사고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은 양자 컴퓨팅 시대를 대비해, 미래의 양자 컴퓨터가 기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제품 개발을 넘어, '미래의 보안 표준'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모든 IoT, 모바일, 차량용 디바이스에 이 기술이 적용된다면, 삼성은 단순한 칩 공급업체를 넘어 미래 디지털 생태계의 보안 기준을 주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도약을 위한 세 가지 과제

그러나 화려한 트로피만으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 성과를 지속가능한 도약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세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 공급망과 자본의 속도를 기술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다.

저전력 AI 칩, 4D 레이더, 로봇 플랫폼은 대량 생산과 글로벌 유통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영향력을 발휘한다.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장기 자본, 대기업·공기업과의 공동 개발·선구매, 해외 파트너와의 라이선스 계약 같은 중간 다리가 촘촘히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더라도, 까다로운 국내 규제나 레퍼런스 확보의 어려움에 부딪혀 글로벌 진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선제적 투자와 공공 부문 실증 사업 지원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둘째, 규제와 책임의 프레임을 새로 짜는 것이다.

기고문 ①에서 보았듯이 피지컬 AI는 수질 샘플링, 고공 작업, 중장비 운전처럼 위험한 물리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정책의 초점이 "어떤 데이터를 써도 되는가"를 넘어 "어떤 로봇이 어디까지 움직여도 되는가",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이 CES에서 보여준 기술 수준에 걸맞은 선제적 안전 기준과 시험·인증 체계, 규제 샌드박스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인재와 일자리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다.

피지컬 AI와 B2B 플랫폼의 확산은 산업 구조 전체를 재구성한다. 물류창고·발전소·공항·병원에서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풍경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이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아니라, 어떤 일을 로봇에게 넘기고 인간은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다. 직업 교육과 재교육 체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현장형 인재' 양성이 동시에 논의되어야 한다.

▶CES 트로피를 국가 전략으로

CES 2026은 한국이 기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러나 진정한 기술 리더십은 상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세계 시장과 사람들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위대한 기술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 CES 2026의 한국 기업들은 바로 그 경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있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이 성과를 반짝이는 승리가 아니라, 미래 산업 패권을 잡을 수 있는 튼튼한 발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전시장 위로 번쩍이던 CES 트로피는 결국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진짜 승부는 그 트로피를 들고 돌아온 뒤, 우리 안에서 시작된다. K-혁신의 도약은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다.

[Gemini-3.0 Pro 생성 이미지]

▷본 기고문은 [CES2026 Innovation Award로 분석한 Tech Trend 2026: 보이지 않는 기술(Invisible Tech). 신동형]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 제이슨 박은 미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 후 캘리포니아 주 고교 교사를 거쳐 일리노이대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했다. 현재 이스턴 일리노이대, 사우스웨스트미네소타 주립대, 독일 유럽대의 입학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유튜브 및 틱톡 채널 '제이슨튜브'를 운영 중이며, 오산대학교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