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이슨 박 오산대학교 디지털콘텤츠디자인학과 전임교수

 

"AI는 수능을 2시간 만에 풀어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우리 몫이다."[출처: https://x.com/Entraptarr/status/1989545333836149082]
"AI는 수능을 2시간 만에 풀어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우리 몫이다."[출처: https://x.com/Entraptarr/status/1989545333836149082]

올해 수능 수학 시험지가 공개된 직후, 충남대 연구진은 주요 AI 모델들에게 똑같은 문제를 풀게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험지 공개 2시간 만에 GPT-5 Codex가 만점을 기록했고, Grok 4는 97.8점, 총 8개 모델이 90점 이상을 받았다. 책상 앞에서 100분 동안 30문항과 씨름하는 수험생들 옆에서, AI는 이미 답안지를 제출하고 떠난 셈이다.

▷이 '2시간의 충격'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다.

30년 넘게 우리 교육의 핵심 잣대였던 수능이, AI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데이터 처리 과제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학생들이 밤새워 외운 공식과 풀이법이 AI에게는 순간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AI가 풀면 뭐가 남나"라는 교사들의 한숨이 더 이상 허공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AI가 수능을 풀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경쟁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옮겨간 순간, 교육의 목표 역시 달라져야 한다. 계산과 공식 대입은 AI에게 넘기되, 문제를 만드는 쪽, 즉 '무엇을 묻고 왜 묻는지'를 설계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같은 정답이라도 어떤 가정을 세웠고, 어떤 정보를 버렸으며, 어떤 가치 판단을 했는지 따져 묻는 능력이야말로 지금도, 앞으로도 필요한 핵심 역량이다.

▷두려워할 것은 AI가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을 잃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정답'을 암기하게 했고, AI는 그 정답을 완벽하게 재생산했다. 이제는 '왜 이 풀이가 틀렸는지' '다른 접근은 없는지' 논의하는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AI와 함께 수능 문제를 풀며,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어디서부터는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지 교실에서 토론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정답률이 아니라, AI 풀이와 인간 풀이의 차이를 읽어내는 능력이 오히려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실험이 한국 수능 수학을 사실상 글로벌 AI 벤치마크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수학Ⅰ·Ⅱ 공통과 선택과목으로 구성된 30문항, 152점 만점 구조를 그대로 적용해 전 세계 AI 모델을 비교하는 표준 평가틀이 만들어졌다. 한국어로 된 고난도 문항이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AI 성능을 시험하는 '훌륭한 벤치마크'임이 증명된 것이다. 영어 중심 벤치마크에서 비영어권 언어의 성능 격차는 늘 문제였는데, K-수학이 K-팝, K-드라마처럼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우리 교육에 위기인 동시에, 절호의 기회다.

수능이 글로벌 AI 벤치마크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 학생들은 'AI를 잘 쓰는 법'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세대가 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임이 증명된 우리의 평가 콘텐츠를 무기 삼아, 다가오는 AI 시대를 주도하는 교육 선도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이런 실험 데이터를 교육정책과 연계해 공개하고 활용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와 교사가 실제 수업에서 AI를 동료 도구로 쓸 수 있도록 평가·업무·연수 구조를 통째로 손봐야 한다. 셋째, 입시 역시 'AI 사용 금지'라는 선언에 머물지 말고, 어떤 과목에서는 AI 활용을 전제로 한 새로운 평가를 도입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AI는 이미 수능을 2시간 만에 풀어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우리 몫이다. 문제를 푸는 속도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 AI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교육의 한계를 어떻게 고쳐 나갈지 결정하는 일이다. 한국어 수학 문제가 세계 AI의 실력을 재는 잣대가 된 지금, 교육의 다음 페이지를 여는 것도 우리 차례다.

[원문 출처: ISoft Lab,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2026 CSAT Leaderboard – Comprehensive Assessment of Semantic Tasks]

◆필자 제이슨 박은 미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 후 캘리포니아 주 고교 교사를 거쳐 일리노이대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다. 현재 이스턴 일리노이대, 사우스웨스트미네소타 주립대, 독일 유럽대의 입학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유튜브 및 틱톡 채널 '제이슨튜브'를 운영 중이며, 오산대학교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자명 안재석 jsahn@hitech.co.kr